‘투두리스트’ 대신 ‘할 일 줄이기’ 루틴

할 일은 계속 늘어나는데, 끝내는 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투두리스트를 만든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언젠가는 해야 할 일까지 몽땅 적어두고 체크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처음엔 생산적인 느낌이 좋았다. 정리된 리스트를 보면 내가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착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리스트에 적는 일은 늘어나는데 실제로 끝내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여전히 체크되지 않은 항목들이 나를 죄책감과 스트레스로 몰아넣었다.

더 무서운 건, 그 리스트가 점점 나를 압박하는 ‘자기검열 도구’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왜 이것도 못했어?", "왜 시간 낭비했어?", "이건 또 내일로 미루는 거야?"라는 자책이 반복되자, 투두리스트는 더 이상 ‘도움’이 아니라 ‘부담’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환점을 만들기로 했다. ‘투두리스트 만들기’를 멈추고, ‘할 일 줄이기’ 루틴을 14일간 실험해보기로 한 것. 단순히 일을 안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 일만 선별해서 ‘의식적으로 줄여보기’였다. 이 실험은 내가 일과 시간,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바꿔놓았다.

리스트를 없애자 뇌는 더 가볍고 유연해졌다

실험 첫날, 나는 평소처럼 스마트폰 메모앱을 켜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오늘 할 일’을 적으려다가 멈췄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오늘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이 질문 하나만 던지고 하루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하루가 더 편안하게 흘러갔다. 머릿속이 오히려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투두리스트가 없으니 ‘해야 할 일’이 시각적으로 쌓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느끼던 압박감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내가 그동안 리스트를 통해 오히려 ‘자극과 불안’을 키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할 일이 많다고 느끼는 것과 실제로 할 일이 많은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내가 정리한 투두리스트의 절반 이상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고, 남은 절반은 ‘지금이 아니어도 되는 일’이었다.

할 일을 줄이고 나니 하루 중 실제로 중요한 일, 예컨대 중요한 이메일 회신이나 기획서 초안 작성 같은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리스트가 있을 땐 ‘작고 가벼운 일’부터 처리하느라 중요한 일은 미뤄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핵심 업무부터 손이 갔다. 머릿속이 가볍고 명확해졌다는 건, 이 루틴의 가장 큰 초기 효과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지금 가장 필요한 일’로 사고가 전환되었다

투두리스트를 없애고 나서 생긴 가장 뚜렷한 변화는 ‘사고 방식의 전환’이었다. 예전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중심으로 하루를 짰다면, 이제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일이 뭘까?’를 중심으로 판단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예를 들어, 리스트가 있던 시절에는 거기에 적힌 순서대로 움직이려고 했다.
‘메일 확인 → 회의록 정리 → 블로그 포스팅 → 독서 30분’
이런 식으로 짜여 있던 리스트는, 내가 지금 피곤한지, 급한 일이 생겼는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밀어붙였다.
반면 ‘할 일 줄이기 루틴’에서는 그날 나의 에너지 상태, 업무 흐름, 집중력 등을 고려해서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자”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결과적으로 더 효율적이었다. 컨디션이 좋은 시간대엔 고난도 업무를 하고, 지칠 땐 간단한 이메일을 정리하는 식으로 유연한 스케줄링이 가능해졌다. 내 하루는 더 유동적이고, 나에게 맞춰진 흐름을 갖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유연해진 만큼, 자기 효율성과 감정 소모도 줄었다. 하루가 끝날 때 ‘오늘은 진짜 필요한 일만 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시간의 질이 바뀌고, ‘해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졌다

할 일을 줄이는 루틴을 실천하면서 가장 확실하게 체감된 건 ‘시간의 질’이었다.
리스트가 없다는 것, 그리고 ‘빼는 것’에 집중한다는 건 ‘시간을 채우는 게 아니라 남기는 작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즉, 나에게 여백이 생긴 것이다.

이 여백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 동안 나는 ‘지금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에 대해 자주 생각했고,
그 시간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자기 성찰이 생겼다.

예전엔 투두리스트를 채우지 않으면 왠지 모를 죄책감이 있었지만, 이제는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그냥 버리는 용기를 배웠다.
그 결과,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눈에 띄게 줄었고,
대신 ‘하고 싶다’는 자발성이 생겨났다.
이 감정의 전환은 내 멘탈 건강에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생산성이 오히려 더 높아졌다는 점이 놀라웠다.
리스트를 없앴지만 실제 처리한 업무의 양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중요한 일은 더 빨리 처리됐다.
이전처럼 리스트에 휘둘리는 대신, 내가 시간을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할 일을 줄였을 뿐인데, 삶의 밀도가 높아졌다

14일간의 실험이 끝나고, 나는 다시 투두리스트를 만들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결론은 분명했다. 나는 이제 ‘모든 걸 적어두고 체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 대신 하루에 딱 한두 개, 정말 중요한 일만 기록해두고 나머지는 내 컨디션과 흐름에 따라 유동적으로 처리한다.

리스트를 줄였을 뿐인데, 삶이 더 밀도 있게 느껴졌다.
‘이걸 했고, 저걸 못 했고’라는 기준 대신, ‘오늘 내가 어떤 흐름으로 시간을 보냈는가’에 집중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스트레스도 줄었고, 내 자신에 대한 신뢰감은 오히려 높아졌다.
이제 나는 하루가 끝날 때 “오늘도 다 못했네”가 아니라 “오늘은 진짜 중요한 걸 해냈다”는 감정을 더 자주 느낀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끝이 없는 할 일 목록’에 지쳐 있다면, 한 번쯤은 리스트를 지우고 하루를 살아보길 권하고 싶다.
일을 줄였다고 해서 내가 게을러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 정말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크고, 단단하다.

 

‘할 일 줄이기’ 루틴은 투두리스트의 압박과 죄책감을 줄이고, 자발적 집중을 유도한다. 핵심 일 중심의 사고 전환으로 시간의 질 향상, 스트레스 감소가 되며, 스트레스 없는 하루가 더 효율적이고 밀도 높은 삶을 만들어낸다. 불필요한 계획보다 유연한 흐름이 삶의 만족도에 더 큰 영향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