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습관

하루 1번 가족 이름 불러주기

go50 2025. 7. 10. 15:15

가까운 가족일수록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종종 잊고 살아간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를 인정하고 관계를 이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그 중요한 행동을 생략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엄마, 아빠, 언니, 오빠, 여보, 자기… 우리는 주로 관계 중심의 호칭을 사용하면서 정작 ‘이름’은 잊어버린다. 그게 익숙하니까, 이상할 게 없다고 느껴지니까.

 

나 역시 그랬다. 부모님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불러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형제자매의 이름도, 배우자의 이름도 부를 일이 거의 없었다. 대화를 시작할 때조차 그냥 “이거 좀 해줘”, “밥 먹었어?”, “지금 뭐 해?”처럼 말의 목적에만 집중할 뿐, 상대가 누구인지 인식하며 부르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읽은 심리 칼럼에서 이런 문장을 보게 되었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자신의 존재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낀다.” 순간 나는 멈칫했다. 이름이라는 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당신을 향한 나의 주의’라는 것을 표현하는 행위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본 이후, 나는 작고 조용한 루틴을 시작했다. 하루에 단 한 번, 가족 구성원 한 명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이 실천이 내게 가져온 변화는 생각보다 크고 따뜻했다.

이름을 부르는 습관, 말의 시작이 아닌 관계의 회복

처음엔 매우 어색했다. 어머니에게 “엄마”라고 부르던 습관을 잠시 내려놓고, “민자영 씨, 오늘 밥 너무 맛있었어요”라고 말했을 때, 엄마는 “뭐야, 왜 갑자기 내 이름을 불러?” 하며 웃으셨다. 나는 웃으며 “그냥, 이름 부르고 싶어서”라고 답했고, 그 짧은 대화에서 이상할 정도로 따뜻한 기류가 흘렀다. 이 경험은 내게 이름을 부른다는 게 단순히 소리를 내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표현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그 다음 날에는 아버지를 부르며 말을 걸었다. “정호성 씨, 어제보다 얼굴이 더 밝아 보이시네요.” 아버지는 잠시 멈칫하다가 “이름 부르니까 이상하네, 기분은 좋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대화보다 이름을 생략한 호칭에 너무 익숙해 있다. 하지만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상대의 ‘존재’를 명확히 바라보고 있다는 신호이자, 정서적으로 당신을 존중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특히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에서는 ‘존재 확인’이 오히려 더 절실하다.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생략된 존중과 인식이, 결국 정서적 거리를 벌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하루 한 번 이름을 부르는 루틴은 관계의 본질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중요한 행동이었고, 말 한마디로 관계의 온도를 올리는 따뜻한 시작이 되었다.

이름에는 감정이 실린다: 존재를 부르는 소리의 힘

이름을 부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마주치고, 주의가 집중된다. 그리고 그 안엔 감정이 실린다. 단순히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적 연결이 만들어진다. 이름은 그 사람만을 지칭하는 유일한 언어이고,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상대방은 “지금 나를 향하고 있구나”라는 인식과 함께 마음의 문을 연다. 나는 이 루틴을 일주일 넘게 실천하면서 그 사실을 직접 경험했다.

 

부모님의 이름을 불러드릴 때마다 그분들의 얼굴에는 가볍지만 뚜렷한 미소가 피어났고, 그 뒤에 이어지는 대화는 더 부드럽고 따뜻했다. 형제자매와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대화를 할 일이 줄어들었던 요즘,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건네니 더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게 되었고, 거리감이 줄어든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름은 곧 존재를 부르는 소리고, 그 존재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관계의 시작이자 회복의 열쇠가 된다. 하루 한 번 이름을 부르는 루틴은 겉으로 보이진 않지만 감정의 구조를 조용히 바꾸고 있었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내 말투 안에 상대의 이름이 들어갔고, 그로 인해 나 역시 상대를 더 따뜻한 감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하루 1번 이름 불러주기

반복된 호명 속에서 생긴 감정의 교류

하루 한 번 이름을 부르겠다는 루틴은 부담스럽지 않게 실천할 수 있었고, 그만큼 꾸준함을 유지하기도 쉬웠다. 아침 식탁에서, 퇴근 후 거실에서, 혹은 저녁 준비 도중. 다양한 순간마다 가족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주고 짧은 인사를 건넸다. 이름이 들어간 말에는 자연스럽게 감정이 실렸고, 말의 무게가 달라졌다. “자영 씨, 오늘 하루 어땠어요?”라는 말은 단순한 안부 이상의 느낌을 전했고, “호성 씨,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에 비해 훨씬 진심처럼 들렸다.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다 보니 내 입 안에도 자연스럽게 그 이름이 머물게 되었고, 마음속에도 그 사람이 ‘개별적인 존재’로 더 또렷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관계라는 건 결국, 상대방을 얼마나 명확히 인식하느냐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종종 익숙함 속에서 사람의 존재를 흐릿하게 잊는다. 하지만 이름을 부르는 행동은 그 흐릿해진 인식을 다시 선명하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였다. 감정은 흐르고, 이름은 그 흐름을 가리키는 방향표였다. 하루 한 번의 이름 부르기가 감정의 온도를 바꾸고, 정서적 연결을 되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름을 부르는 일, 이것은 좋은 생활 습관이었다

이 루틴을 실천하면서 나는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단지 호칭의 변화가 아니라 감정적 정렬의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상대를 더 뚜렷하게 바라보게 되고, 말 한마디에 더 많은 감정과 주의를 담게 된다. 이건 결국 상대방을 향한 진심의 전달이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이름을 부를 줄 아는 사람은 감정을 주고받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관계는 훨씬 건강하고, 안정적이며, 따뜻하다. 하루에 단 한 번, 가족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작고 사소하지만 정서적 연결을 회복하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인 루틴이었다.

 

말의 시작이 아닌 존재의 인식에서 출발하는 이 루틴은 ‘좋은 생활 습관’이 되었고, 가족과의 거리를 다시 좁히는 감정적 장치로 기능했다. 가족 구성원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 느껴지는 그 따뜻한 울림처럼, 나 역시 그 감정을 매일 한 번이라도 상대에게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름은 기억의 소리이며 감정의 통로다. 오늘도 나는 가족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하루 1번 가족 이름 불러주기하며 느낀점

 

하루 한 번 가족의 이름을 부르는 루틴을 실천하면서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반복할수록 말 안에 감정과 주의가 담기기 시작했고 이름을 통해 존재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생기며 가족 간의 대화가 부드러워지고 감정적 거리도 점차 줄어들었으며 이름을 부르는 습관은 단순한 말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고 감정을 연결하는 좋은 생활 습관이 되었고 결국 이 루틴은 작지만 확실하게 가족의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감정적 의식의 도구가 되었다.